데이터 꼼꼼히 분석 … 자영업자 전용카드 만들고, 소비 성향 따른 맞춤 할인쿠폰 제공하고
현대카드의 데이터 분석 부서인 CLM 사업실은 지난해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그간 고위험 고객으로 분류돼 온 자영업자 가운데 생각보다 우량 고객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를 토대로 1월에 자영업자 전용 ‘마이비즈니스카드’를 출시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장정 P&G 팀장은 “이 카드 소지자의 월평균 사용액은 일반 가입자보다 40% 이상 많다”고 말했다.

관련핫이슈[중앙경제] 커버스토리OK캐쉬백 사업을 하는 SK마케팅앤컴퍼니는 4월 ‘고객 맞춤형 쿠폰’을 선보였다. OK캐쉬백 사용 기록을 분석해 가입자들을 11개 소비생활군으로 나눈 뒤 각 집단에 맞는 혜택을 제휴사들과 함께 제공한다. 장승훈 매니저는 “일반 쿠폰을 실제 쓰는 비율은 0.5~1%인 데 비해 맞춤 쿠폰은 5~12%에 이른다”고 말했다.

◆불황, ‘데이터 분석’으로 잡는다

회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 매출과 충성고객을 늘리고 비용과 리스크는 줄이는 작업이 불황기 산업 현장에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비즈니스 분석(BI) 솔루션 업체 SAS코리아의 조성식 사장은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세상에서 관행이나 ‘감(感)’만으로는 폭증하는 정보와 변수를 소화하기 힘들다.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해 고객의 불만과 욕구를 미리 파악하고, 제품의 가격·재고량을 좀 더 적절하게 책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학에선 흩어져 있는 데이터(data)에서 광맥을 찾아낸다(mining)는 뜻에서 ‘데이터 마이닝’이란 말도 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DC는 “BI 솔루션 시장 규모가 5년간 연평균 10% 가깝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BI를 바탕으로 꼭꼭 집어내는 표적 마케팅을 강화해 ‘투자 대비 수익률(ROI)’을 높이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소비자 접점이 많은 금융·유통·소비재 업종이 활발하다. <표 참조>

신한은행은 고객의 입출금 거래 내역 등을 분석해 특정 시점에 대출이 필요할 걸로 보이는 명단을 뽑았다. 이들을 집중 공략하니 1~2%에 불과하던 대출 안내전화 성공률이 13%까지 올라갔다. KB국민은행도 새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도입한 뒤 6개월 동안 재유치에 성공한 수신 만기 고객의 숫자가 이전에 비해 월평균 21% 증가했다. 롯데면세점은 휴면 고객 중 구매 잠재력이 큰 고객을 선별하는 기법을 고안했다. 이를 활용해 잠재 고객층의 매출을 월별로 40~300% 늘렸다. 국내 모 식품업체는 OK캐쉬백과 제휴해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한 결과 사무실 비치용 차·음료 구매의 결정권이 ‘막내 사원’에게 있다는 걸 파악했다. 각종 연회나 세미나를 유치하려는 호텔리어들이 고객 회사 경영진의 비서들을 공략하는 이치와 흡사하다.

데이터 분석은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도 힘을 발휘한다. 포스코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에 6시그마 프로젝트 추적 시스템 등을 결합해 생산성을 높였다. 핫코일 생산 공정의 리드타임(생산 소요 시간)은 30일에서 14일, 재고 보유량은 100만t에서 40만t으로 줄었다. 심각한 불량이 발생하는 비율(스크랩 손실률)도 15%에서 1.5%로 확 낮아졌다. 현대자동차는 고객 불만, 부품 수급 등의 정보를 정밀 분석해 문제를 미리 발견해 내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일본 혼다자동차 미주법인은 리콜 결정 시기를 출시 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할 수 있었다.

◆‘숫자의 함정’ 주의해야

액센츄어코리아의 임동훈 전무는 “CRM 같은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기서 도출된 마케팅 시사점을 현장에 제대로 적용하고 어떤 효과가 났는지 따져 직원 평가에까지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숫자의 함정도 경계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신형원 연구원은 “고객 만족도는 높아졌는데 수익성이 악화되는 난처한 경우가 있다. 새로운 분석 틀을 써보거나 현장 인력을 분석에 참여시켜 고객 접점에서의 시각을 가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