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가정교사 3人이 밝히는 경영자들의 현안은◇

램 차란과 노엘 티치. 미 제너럴일렉트릭의 전 경영자 잭 웰치의 20년 치세를 뒷받침했던 CEO 가정교사들이다. 이들은 복잡한 현안을 쉬운 말로 풀어내며 핵심을 콕 집어내거나(램 차란), 통찰력을 담은 리더십 강의(노엘 티치)로 이 전설적인 경영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수들이다. 요즘 국내에도 ‘램 차란’ 혹은 ‘노엘 티치’를 꿈꾸는 CEO 가정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왕년의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앞세워 국내 중소·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상대로 때로는 마케팅 전략을, 혹은 ‘란체스터 전략’을 설파하며 세를 조금씩 넓히고 있는 것. <이코노믹리뷰>는 일본 와세다대를 나와 소기업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황문기 씨, 이랜드에서 근무하다 역시 중소기업 CEO들을 상대로 리더십을 지도하는 김형곤 씨, 그리고 국내 기업에 가장 취약하다는 ‘협상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전문 컨설턴트인 박상기 씨 등 3명의 컨설턴트를 만나보았다. 그리고 개인 컨설팅 시장 현황과 더불어 이들이 만난 국내 중소기업·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요즘 어떤 고민들을 안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소기업CEO, 대기업 따라하기가 문제” - [ 소기업 전문 황문기 컨설턴트 ]

지난 19일 오후 5시, 환락의 거리로 알려진 서울 중구 북창동.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초로의 남자들이 무리를 지어 한 건물을 찾았다. ‘소상공인 센터.’ 허름한 이 건물에서 이들을 반기는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바로 CEO 가정교사인 황문기 컨설턴트이다.

일본의 양대 사학인 와세다대를 나온 그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대농 의류수출부 도쿄지점에서 근무하다 본사가 신동방에 인수합병되면서 지난 1997년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그는 당시로서는 막막하기만 했지만 돌이켜보면 전화위복이 됐다고 고백한다.

“쌀과 김치 유통회사를 차리고 대기업에서 배우고 익힌 기법들을 적용해 봤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이어 직장인들의 마지막 종착역이라는 작은 식당을 내고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가 이날 자신을 찾은 소기업 경영자들을 상대로 강의한 내용은 쓰라린 경험담을 담고 있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서점에서 뜻밖의 힌트를 얻었다고.

“일본의 주요 서점을 샅샅이 훑고 다니며 란체스터 전략, 소기업 경영 지침들을 읽다보니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00여 만원어치의 관련 책자를 구입해 탐독하게 됐습니다.”

그는 기자가 건네는 명함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중소기업은 명함부터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함의 뒷면에 영문으로 회사명이나 이름을 표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실수라는 것. 이름, 취미, 주량, 감명 깊게 읽은 책 등을 기재하는 편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데 더 낫다고.

홈페이지도 현장 사정을 모르는 전문 제작사에 맡기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대기업의 수려한 홈페이지도 소기업 입장에서는 잊는 편이 낫다. 소비자들이 정작 이 회사의 주력제품이나 서비스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곧 떠나버리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 98%가 종원업 30명이 안되는 소기업입니다. 대부분이 대기업의 전략을 답습하다 낭패를 보는 사례가 많습니다.” 군대로 치면 부대원이 열명도 안 되는 분대장이 군단장의 부대 운용방식을 시종일관 따라가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반문이다.

소기업은 해마다 50만개 정도가 문을 닫고 있는 데, 대부분전략의 오류에 기인한다고 하는 황 사장은 언젠가는 이 시장이 블루오션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 능률협회 도쿄지부 연구원을 지낸 부인이 마케팅을, 자신은 전략을 지도하고 있는 부부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중기CEO, 感에 의존… 현안 표현 못해” - [ 중소기업 전문 김형곤 컨설턴트 ]

“좋은 성과를 꾸준히 내고 있는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가 하루는 저를 찾아왔어요. 그의 고민은 성과는 괜찮은데, 왜 좋은 성과를 내는지 근본원인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김형곤 컨설턴트는 이랜드 출신이다. 당시로서는 드물던 ‘아이디어 담당 팀’을 이끌었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가 실험적인 조직들을 대거 폐지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주인 의식을 지니는 것과 자신이 실제로 주인인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이후 밤새 리더십, 그리고 전략 관련서 등을 파고들었다고. 이랜드 아이디어 팀에서 부서별 현안을 돌아보고 해결책을 고민하다 풀지 못한 의문들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

“회사 생활을 하며 늘 따라다니던 의문들이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이 책들을 섭렵하면서 한두 페이지 정도로 핵심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의 산물들은 모두 그의 강의 교재가 됐다. 중소기업 CEO들이 그의 주요 고객들이다.

그는 한 달에 4~5명 정도의 중기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진단과 처방전을 제시한다.

활동 초기에는 주로 전략 컨설팅, 마케팅 등을 담당하다 지금은 리더십 코칭 쪽으로 선회했다. 최고경영자가 바뀌어야 회사 운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가 바라보는 요즘 중소기업 CEO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자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말로 풀어 설명할 수 있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뜻밖에도 많지 않습니다. 처방전을 제시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배경입니다.” 그의 진단은 이렇다.

중기CEO들이 현장 경영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 이론적인 틀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

지엽적인 사안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회사의 경쟁력을 뒤흔들 수 있는 경영 환경 변화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회사는 물론 각 부서의 장 역할을 담당하다 보니, 경영자의 감에 의지하는 ‘주먹구구식 경영’을 탈피하기 어려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형곤 컨설턴트는 CEO가 달라지지 않으면 회사의 미래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그가 ‘전략’에서 ‘리더십’ 분야로 교육의 물꼬를 돌린 배경이다. 맨투맨 강의를 받고 난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평소 사용하지 않던 피터 드러커의 ‘경계조건(border condition)’ 같은 단어를 쓸 때 그는 뿌듯하다고 털어놓는다. 오는 2020년까지 30개의 성공 기업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중소기업 맞춤형 컨설팅 시장에 진출한 배경은 무엇일까. “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 뒤 컨설팅 분야 니치 마켓인 중소기업 컨설팅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정작 컨설팅이 절실한 중소기업들은 예산이 부족해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중소기업의 경우 경영사정 악화로 자금 사정이 악화된 연 후에야 ‘해결책을 구하는 실수를 한다.

반면 시장 상황이 좋아 자금사정은 양호한 기업들은 위기의 조짐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자의 감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경영이 저마다의 백년대계를 망친다는 얘기다. 그가 이들을 집중 공략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삼성CEO, ‘마케팅’ 물어보더라” - [ 협상학 고수 박상기 컨설턴트 ]

그는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의 CEO를 만났다. 마케팅 전략을 주로 논의했는데,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세계 부(富)의 지형이 화젯거리였다. 신흥 시장들이 속속 글로벌 무대에 편입되면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부의 대부분이 부유층에 집중되고 있는 현 상황에 적합한 마케팅 전략이 대화의 주종을 이루었다.

“일반적인 마케팅 ‘세그멘테이션(분할·segmentation)’ 전략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다 보면 ‘백전백패’하기 쉽다”는 게 박상기 컨설턴트의 지론. 삼성그룹의 이 최고경영자는 그룹의 또 다른 전자 계열사를 화제에 올리며, 그의 이러한 분석에 귀를 기울였다고.

“3년 전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1~2년 후 등장할 고객을 예상하면서 시장의 변화, 마켓 세그멘테이션 등을 파악하는 일이 사업 성패의 관건입니다.”

박상기 컨설턴트는 협상학 전문가이다. 그런 그에게 마케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협상학 전문가를 만나서도 마케팅을 화제에 올릴 만큼 요즘 삼성그룹 최고경영자들이 자나 깨나 이 분야에 사로잡혀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주 종목은 역시 ‘협상학’이다.

대기업·중소기업 최고경영자를 두루 만나는 그의 인기비결은 바로 ‘전문지식’이다.

특히 영화 속 협상 사례들을 교재로 정리해 쉽게 풀어준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이 인정한 고급 협상 기법들을 동시에 전수하는 것이 그만의 강점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관심도 높은 편이다.

미국 시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장기침체 조짐까지 보이면서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신흥 시장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기업들이 협상학에 새삼 주목하고 있는 것.

중국,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지역별 수익기반의 재구축이 주요 관심사이다.

그는 중소기업·대기업 CEO의 스타일 차이도 덧붙였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주로 전략이나 마케팅을 비롯한 넓은 주제의 대화를 선호하는 반면, 중기 최고경영자들은 실무적인 사안에 관심이 높다는 것.

다만 협상의 심리학적, 인문사회적 측면을 강의하다 전문적인 협상 기법으로 화제를 돌리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경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귀띔하기도. 현대모비스에 다니다 퇴사한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협상학 전문가로 나선 그는 이번 주 중에는 포스코에서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